역사를 엮어낸 소금
식탁에 오르는 귀하지 않은 조미료인 소금, 이 화합물이 역사를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되고 있다. 소금은 인간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물질이어서 소금을 구하려고 전쟁이 일어났으며, 소금을 기반으로 하여 제국이 건설되었고, 소금과 더불어 제국이 붕괴되었는가 하면 소금을 바탕으로 문명이 꽃피기도 했다.
급료라는 뜻의 영어 ‘ 샐러리 (salary) ‘ 란 낱말은 소금에서 나왔다. 로마의 군인들은 살라리움 즉, 소금을 수당으로 받았다. 뒷날 이 말은 소금을 사라고 주는 현금급여를 의미하게 되었다.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소금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에 눈뜨게 되었다. 소금이 없으면 몸 안의 소금과 물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깨져 탈수현상을 일으키며 죽는다.
석기시대의 부족들은 가축의 뒤를 따라 소금 핥는 곳을 찾아갔다. 소금 핥는 곳이란 동물들이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찾아낸 암염의 노두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목숨을 지켜주는 이 바위를 자기 동굴로 옮겼다. 그러다가 마침내 보다 확실한 공급원인 소금 물샘을 발견하게 되었다.
영국 잉글랜드 지방의 드로이트위치, 프랑스의 모젤, 독일의 자알레 지방 등의 소금물샘 주위에 원시문명이 발달했다.
몇 천 년 사이에 소금물의 물을 증발시킬 불을 때려고 숲의 나무를 깡그리 베어 버렸다. 소금을 구하느라 주변의 풍경마저 뒤바꾸어 놓고 말았다.
고대인들은 바닷물에 젖은 토탄을 파내서 그것을 때고 난 다음 재를 바닷물에 넣어 끓여서 소금을 뽑아냈다. 이로 말미암아 연안지대에 여기저기 호수가 생겼다.
유럽의 초기 주민들 사이에서 소금 생산이 최초로 발달된 제조업의 하나가 되었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역은 황하의 염전 부근 이었다. 요르단 골짜기의 마을들은 기원전 8000년경에 소금이 많이 녹아 있는 사해 부근과 역시 염분이 풍부한 소돔산 주위에서 발달했다.
바다는 언제나 세계의 주요한 소금 공급원이었으며, 역사의 주요한 국면은 해면 높이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바다가 후퇴하게 되면 그 뒤에 해안의 소금못이나 소금을 머금고 있는 늪지대가 남았다 바다가 솟아오르면 이처럼 소금을 많이 머금은 지역이 바다에 삼켜지고 말았다.
기원전 500년경에 해면은 인류의 기록상 가장 낮게 내려가서 현재의 해면보다 1미터 낮았다. 그리스와 페니키아 문명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당시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만든 대량의 소금을 외국에 팔 수 있었으며 페니키아인들은 멀리 스페인으로부터 소금을 긁어모아 재고를 늘리기도 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는 한 해에 약 1억 6900만 톤의 소금이 소비되고 있다. 그 소금은 주로 땅 밑의 소금물샘, 혹은 염호나 암염에서 뽑아낸다. 그러나 생산량의 25 % 이상을 아직도 해안에 있는 염전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이 염전들은 몇 세기 전에 그랬듯이 언제 해면의 상승으로 바닷물에 잠겨 버릴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다.
지금부터 백년 뒤의 우리 후손들은 현재 바다밑에 있는 땅에서 소금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